대중 영화는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는 다시 디즈니의 주문에 걸리고]는 영화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어떤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고 전파되는가에 대해 성찰한 책이다. 지은이는 저간의 영화의 유해성 논란에 대해 “해로운 것은 폭력이나 섹스만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면서, 스크린에 드러난 이면에 담긴 영화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특히, 정신 분석학적, 페미니즘적,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틀에다 원작 소설이나 리메이크된 영화 혹은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그 재현된 양상과, 문화·정치·역사를 읽어냄으로써 영화의 꼼꼼한 다시 읽기를 수행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크게 3부로 나뉜다. 그 주제는 영화와 어린이, SF 영화의 세계, 영화 속의 시대와 사회이다. 1부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지니는 어른 세계의 반영이라는 측면을, 2부에서는 SF 영화가 보여 주는 미래상에 대한 현재적 함의를, 3부에서는 영화가 드러내는 역사성과 사회성이라는 측면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각 장은 독립된 비평으로서 개별 영화에 대한 작품론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는 이미 몇만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디즈니 애니메이션 등과 같이 누구나가 보았을 만한 작품들이다. 일반 관객이라면 누구나 해피 엔딩에 흐뭇해하며 극장 문을 나설 때를 그 비평의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중 영화의 행복증적 결말에서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읽어내는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며, 영화의 외형적 화려함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1장 우리는 다시 디즈니의 주문에 걸리고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다. <인어 공주> 이후 디즈니에 의해 재창작된 애니메이션의 원작 동화를 함께 분석한다. 동화란 어린이에게 투사된 어른 세계로서 창작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라고 설명하면서, 디즈니에 의해서 동화가 어떻게 보수적, 성차별적, 미국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2장 대공황기 직후의 어린이 영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앞서 밝힌 어른 사회의 이데올로기의 개입으로 일그러진 동화의 대안을 대조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두 영화의 분석을 통해 모색한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드러내는 보수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가정적, 순종적인 여성상, <오즈의 마법사>의 지성과 용기를 갖춘 주인공을 대비시켜, 동화 혹은 어린이 영화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3장 가족 로맨스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는 일본 에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프로이트적 가족 로맨스 개념에 준거해서 분석한다. 또한 복합적이고 모호한 줄거리와 상징이 마니아들에게 오타쿠적인 요소로 작용하게끔 만드는 서사 전략을 살펴본다.

4장 억압된 여성성의 귀환: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이 소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표방하는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분석한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바로크 과학에 근거한 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영화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는지, 또한 영화가 소설의 서사를 어떻게 변형시켜 그 주제를 비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소설에서 보여 주는 주제 의식을 제대로 계승한 작품으로 <블레이드 러너>를 꼽으며 그것의 분석을 시도한다.

5장 시간 여행의 정신 분석학: <라 제테>, <터미네이터>, <12 몽키즈>에서는 시간 여행이라는 테마를 3편의 영화, 즉 <라 제테>, <터미네이터>, <12 몽키즈>에서 그것을 어떻게 영화화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특히, <라 제테>를 리메이크한 영화인 <터미네이터>와 <12 몽키즈>가 원작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상반된 주제의 두 영화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해석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카산드라 콤플렉스가 두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재현되었는지를 분석한다.

6장 정보 민주주의 혹은 기억과 정보의 준별: <코드명 J>에서는 SF 영화가 미래를 묘사함으로써 현재의 욕망과 징후를 드러내는 방식을 설명하고, <코드명 J>가 모호하게 드러내는 미래상의 취약성을 분석한다.

7장 공룡의 계급성과 인종성: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의 종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불안으로 드러나는 <쥬라기 공원>의 주제의 이면을 프랑코 모레티의 《프랑켄슈타인》 분석에 기대어 정치 경제학적 시각에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