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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의 세계
판매가격 9,500원
도서상태  
저자 한상준, 홍성남
발행일 1999년 12월 20일
사이즈 A5
쪽수 224쪽
ISBN 978-89-85367-85-4 9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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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엮은이
한상준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연구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장 뤽 고다르- 소비 사회의 영화와 이데올로기》, 엮은책으로는《로베로 브레송의 세계》(공편저)가 있다.

홍성남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필름 컬처> 편집 실무로 일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영화글을 기고하고 있다.
책 소개

브레송, 그 초월성을 향한 여정
로베르 브레송은 아마도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영화 감독일 것이다. 50년에 이르는 경력에 단 13편의 장편 영화밖에 만들지 않았음에도 그가 후대의 감독들에게 미친 영향은 넓을 뿐 아니라 심원하다. 이 책은 현재의 젊은 영화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주고 있는 프랑스 대가의 작품 세계에 접하는 데 있어 적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 작품으로는 <소매치기>, <무셰트>, <호수의 란슬로트>, <시골 사제의 일기>, <돈> 등이 있다.

 

브레송, 그 초월성을 향한 여정

"만일 영화 감독들에게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로베르 브레송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상을 받았을 것이다."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은 브레송에 대해 이와 같은 찬사를 보내면서, 그의 영향을 받은 영화 감독들을 길게 열거한다. 그 감독들의 목록은 1960년 이후 세계 영화의 역사 자체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다. 고다르와 안토니오니에서 시작해 자크 리베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장 마리 스트라우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파스빈더, 샹탈 아커만, 안드레이 소쿠로프, 벨라 타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짐 자무시, 할 하틀리 등등. 우리는 이 목록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감독들까지 추가할 수 있다.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가 좋은 사례다. 뿐만 아니라 후 샤오시엔이나 왕가위, 그리고 홍상수처럼 훨씬 가까이 있는 감독들까지 어떤 식으로든 브레송과 연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현대 영화 발전에 대한 커다란 영향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할 만큼 브레송에 관한 연구가 불충분했다. 브레송의 영화 자체를 접하기 힘들었던 국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영미권에서도 1972년 폴 슈레이더의 영화의 초월적 스타일 이후 이렇다 할 연구서는 나오지 않은 채 간헐적인 글들만이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그나마 폴 슈레이더의 서적도 브레송 한 사람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오즈 야스지로와 칼 드레이어의 연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사실 브레송 영화는 전체 편수도 그리 많지 않다. 1943년에 첫 장편 영화 <죄악의 천사들>을 만든 이후 1983년 <돈>까지 40년 동안 그가 만든 작품은 13편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 13편의 영화들은, 특히 스타일의 측면에서 볼 때 놀랄 만큼 일관성을 유지한다. 대략 <시골 사제의 일기>에서 확립된 '브레송 스타일'은 이후 이야기 소재의 측면에서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 중심적인 특성들은 그대로 견지했다. 이렇게 언뜻 단순해 보이는 브레송의 세계가 긴 시간 동안 접근을 어렵게 한 것은 무엇보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들이 동시대의 구체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에 연유할 것이다.

역으로, 브레송의 영화들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브레송이 동시기 문화 환경에서 늘 소외되었다는 사실 때문으로 볼 수 있다. 2차 대전을 비롯한 유럽 사회의 정치적 격변, 누벨 바그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계의 변화 등은 브레송의 영화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브레송은 동시대 문화에 대한 관심 및 사회적 행동 대신에 종교적인 정신주의, 인간의 자유 의지, 예정 운명, 신의 은총 같은 신학적 문제들에 집착했다.

브레송 비판자들이 그를 병적인 은둔자, 자포 자기적인 신경증 환자, 기껏해야 소심한 천재 정도로 간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브레송이 사회 문제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초창기 영화 몇 편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2차 대전 중에 군인으로 복무했고, 독일군 포로가 되어 10개월 동안의 감옥 생활을 경험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이 체험은 당연히 그의 작품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죄악의 천사들>, <저항>, <소매치기> 등에서 감옥 체험은 그 자체로서 중요성을 지닌다기보다 일종의 '신학적 딜레마'에 대한 소재적 배경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 즉, 브레송은 감옥의 은유화를 통해 서구 신학의 전통 안으로 자신을 가져갔다.

그 결과 브레송은 장 콕토(그는 브레송에게 <불로뉴 숲의 여인들>의 대사를 써 주었다)처럼 아주 독자적인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시인'으로서 독특할 수밖에 없었던 콕토를 예외로 할 때 프랑스 영화사에서 브레송과 더 잘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은 자크 타티 정도일 것이다. 브레송과 타티는 많은 점에서 공통적이다. 먼저 두 사람 모두 영화계 현장에서의 도제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 브레송은 화가로 출발했으며, 타티는 마임 배우였다. 두 사람 모두 1930년대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브레송의 첫 중편 영화 <공적인 일 Les Affaires publiques>은 1934년에 나왔다), 1950년 무렵에 명성을 얻었다.

차례
브레송, 그 초월성을 향한 여정 / 한상준
브레송 비평의 주요 경향 / 제임스 콴트
로베르 브레송: 내적 모험 / 르네 프레달
모더니스트 브레송과 시네마토그래프 / 홍성남
포스트모더니즘, 부정 신학 그리고 시네필리 -- <소매치기> / 임재철
브레송의 각색에 대해 -- <무셰트> / 윤경진
전설의 종말, 에크리튀르의 탄생 -- <호수의 란슬로트> / 한상준
<돈>, 어느 살인자의 초상 / 김성욱
영화 작가들이 본 브레송
필모그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