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꿈을 길러 주고 형상화하는 매체로서 만화
오랫동안 만화는 유치한 것, 저질의 것, 아이들이나 보는 것,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안 보면 더 좋은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만화를 스포츠 신문의 연재 만화나 대본소의 만화, 만화 영화의 만화만으로 국한시켜 보는 고정 관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언뜻 만화의 전부를 이루는 것 같은 이런 만화들은 오늘날 실상 그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으며 오히려 만화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원래 대본소용으로 제작되었던 만화가 서점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만화가가 다른 전문인들과 함께 광고 모델로 활동하게 된 현상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이제 만화는 우리 생활의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며 문화의 주변을 박차고 나와 중심으로 당당히 진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화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오락 산업이나 만화 영화에서 보듯이 만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매체로서의 만화의 우수성이다. 만화는 비교적 값이 싸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 설득과 정보 전달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그 이용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하지만 만화가 인기를 얻는 배경에는 만화의 경제적, 기술적 효과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만화는 한 세대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들의 꿈을 길러 주고 형상화하는 매체로서 그들과 함께 자라왔던 매체이기 때문이다. 만화를 구독하는 연령층이 점점 상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세대의 성장과 연관되어 있다.

한편으로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 주며 동시에 역으로 그 지평을 제한하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만화에 표현된 상상력의 폭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만화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꿈을 담고 있느냐는 그 만화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면서 또한 만화를 보는 우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읽어 내야 할 측면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매체로서의 만화, 만화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분석, 만화가들이 그들 만화에 담고 있는 의미, 시대에 따른 만화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첫번째로는 만화란 매체의 특성과 꿈꾸기 매체로서의 활용 가능성과 1980년대 만화의 사실성의 극대화, 정치 경제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퇴보를 하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1980년대 우리 만화의 대표적인 만화가인 박봉성, 이현세, 고행석, 허영만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만화를 우리의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세 번째는 대중 만화에서의 1980년대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또 만화에서의 저자의 문제와 1990년대 속에서 만화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우리 만화를 즐기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 만화의 현실에 대한 내 나름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크게 세 집단을 염두에 두었다. 첫번째로는 만화를 즐기지만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감추고자 하는 다수의 만화 독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필자는 만화를 읽는 것의 의미를 환기시켜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자 노력했다. 두 번째로 만화를 즐기지는 않지만 만화에 대한 비판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만화가 중요한 사회 경제적 현상이며 결코 단순히 무시하고 넘겨 버려도 좋은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다뤄진, 또는 그들을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는 우리 만화가들 일반이 있다. 이들 만화가들에게 나는 그들이 만화에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고자 했으며, 또 그들에게는 언제나 그들의 작업을 지켜 보는 애정 어린 감시자가 있음을 알려 주고자 애썼다. 떳떳한 마음으로 그 의미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면서 우리 만화를 즐기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라면 이 책은 아마 그들과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다른 한 명의 만화 독자와 그의 생각에 대한 정보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머리말에서